황토석하우스총판/불가의말씀

[스크랩] 무소유無所有조차 소유

기쁘리 2015. 6. 14. 20:05

    무소유無所有조차 소유

                                                                                                             

 

   “인간의 역사는 자기네 몫을 좀 더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과정이며,

    소유 욕을 채우기 위해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소유하려고 한다.”

 

   지난 3월 11일 법정스님이 입적하시었다. 그 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며 생전에 출간한 모든 책의 절판을 유언으로 남기시었다.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며 살다 간 스님의 말씀에 작은 의문을 느꼈다. 말빚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음 생으로 무엇을 가져갈 수는 있는 것일까? 책 절판의 의미는 무슨 뜻일까? 법정스님의 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스님이 직접 집필하신 것과 다른 작가나 신문 또는 문예지 기자가 법정스님을 만나 대담을 나누거나 옆에서 생활을 지켜보며 쓴 글들이다. 나는 스님이 직접 쓰신 무소유, 오두막 편지, 서있는 사람들, 물소리 바람소리 등의 수필집을 읽었고, 시인 류시화가 스님의 법문이나 강연내용을 듣거나 ‘맑고 향기롭게’ 회원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엮은 ‘산에는 꽃이 피네’ 의 산문과 신문, 잡지에 투고하셨던 많은 글, 그리고 스님이 입적하기 일주일 전에 문예지 편집부에서 2년 동안에 걸쳐 대담하고 상의 하여 발행한 법정 스님이 추천한 ‘내가 사랑한 책들’을 감명 깊게 읽었다.

 

   스님의 유언대로 책이 절판될까봐 서점에는 법정스님에 대한 책들을 너도 나도 사려고하는 바람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어떤 책은 품귀현상을 가져온 가운데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1993년에 발행한 법정스님의 ‘무소유’ 가 3월 26일에 인터넷경매 사이트에서 정가(1,500원)의 700배가 넘는 110만 5,000원에 팔렸다. 또 다른 경매에서는 입찰가가 21억 원 까지 치솟는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실구매자가 나서지 않아 재경매 끝에 30,000원에 낙찰되는 등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스님의 많은 책들 중에 왜 ‘무소유’란 책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지 궁금하다. 스님의 다른 책에 비해 내용이 월등히 좋거나 비싸게 만들어진 책도 아니다. 다만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소유‘ 란 환상적인 책 제목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가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어 버리기 위한 방법을 배우고자 하는 이유일까?

 

   이렇게 책이 품절되어 고가로 판매된다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책장에 꽂혀있는 스님의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3,000여권이 넘는 책장에서 “무소유”를 비롯한 7권의 책을 찾아내기까지는 꽤 시간이 흘렀다. 책들을 한 군데 꽂아 놓으면서 성급한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 스님의 책이 다 품절되어 가격이 치솟아라! 그렇게 되면 내가 갖고 있는 7권을 팔면 몇 백 만원 아니, 몇 천 만원? 이런 흐뭇한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흥겨운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 돈을 어디에 쓸까? 해마다 옷이며 구두까지 챙겨주는 아내에게 이번에는 나도 큰소리 한 번치며 값비싼 선물 하나 해야지, 그리고 대학교 강사로 힘들어하는 큰 아들에게도 도움도 줘야지 하면서 흐뭇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법정스님의 죽비가 내 어깨를 후리치며 뇌성과 같은 목소리로 적막을 깨고 있었다. 나는 탐욕과 허영으로 가득 찬 영혼들에게 마음도 비우고 몸을 낮추라는 의미로 글을 썼는데 “무소유” 마저 소유하여 욕심을 채우려 하느냐? 하시며 꾸짖는 소리였다. 즐거움도 잠시 나는 긴 침묵 끝에 나 자신을 크게 불러 보았다. 이순耳順을 지나 공자님이 말씀대로 ‘어떤 일을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종심從心’의 나이 70이 대문 앞에 와 있는데 엉뚱한 욕심을 부리고 있었구나, 이제 모든 그물과 올가미를 던져버린 어부나 사냥꾼이 되어야 하는데도 마른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니, 내 나이가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은 맑아지고 생각은 깊어져 행동이 신중해야 되는데 버려도 될 굳은 습관, 아직도 움켜쥐고 있는 탐욕, 마음은 더욱 소심해져가는 내가 보일 뿐이다.

 

   無所有’란 무소유 자체가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얻어지는 심신의 자유가 아니겠는가,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운명의 소유자다. 그래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생기고, 성경에서도 ‘내가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져온 것 없었으니 죽을 때에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리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한 무소유로 살아갈 수는 없다. 입어야 하고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생명활동을 할 수 있으니 무소유란 필요한 만큼의 소유, 필요 이상의 것에 대한 탐욕을 경계하는 정신이다. 그런 무소유를 모두들 책에서 찾으려고 서점에 줄지어 서있는 것은 아닐까, 스님께서는 말했다.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또 한 책을 넘어서 어디에도 의존함이 없이 독자적인 사유와 행동을 쌓아 감으로써 사람은 그 사람만이 지니고 누릴 수 있는 독창적인 존재가 된다고 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을 존재지향과 소유지향으로 나누었다.

 

<존재지향은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유지향은 꽃이 아름다운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거냐, 네 거냐가 더 중요하다. 프롬은 현대인들이 소유지향으로 바뀌어왔다고 본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그가 누구냐?’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갖고 있느냐“로 판가름된다는 것이다. 프롬은 소유와 욕망에는 한계가 없어서 소유지향적 삶은 행복하기 힘들다고 했다.>

 

    무소유를 책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자기 인생의 진정한 무소유를 위해 마음으로 이루려고 노력할 때, 모두 잠든 밤 홀로 깨어 오두막을 밝힌 법정스님의 글도 그 빛을 보게 될 것이다. 또 한 무소유는 읽고 터득하고 깨닫는 게 아니라 실천하고 수행하는 데서 얻어지는 삶의 지혜가 될 것 같다. 잠시나마 욕심이 부풀어 헛된 꿈을 꾼 것이 바다는 메꿀 수 있어도 사람의 욕심은 채울 수 없다는 인간의 본성이었는지도 모른다. 법정 스님의 주옥같은 많은 글들이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그 의미를 깨달아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져 말빚이 아닌 말 빛으로 세상을 밝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래 전에 읽었던 책 표지가 누렇게 바랜 스님의 “무소유”를 다시 펼쳐 들었다. 그 속에서 무소유의 진리를 터득하고, 그리하여 모든 것 다 소유하고 싶다. 

 


Sun of Jamaica

출처 : 인생의 야영지
글쓴이 : 청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