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해설
문학박사 박기완
1. 십계명이란?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두 개의 돌판에 써서 주신 계명인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영원히 지켜야 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돌판을 두 번 만들어 주셨다. 처음 것은 모세가 산에서 내
려와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패역하는 모습을 보고는 던져서 깨어졌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다시 모세더러 두 돌판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오라 하시어 그 돌판
에 이 십계명을 써 주셨다. 그러나 두 번 모두 내용은 꼭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이 두 돌판을 언약궤 안에 넣어
보관하도록 하셔서 영원토록 그 계명을 잊지 말도록 하셨다.
2. 십계명의 내용 분류
출애굽기 20:2-17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들을 분류함에 있어 교파마다
조금씩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계명이 모두 10가지라는 점에서는 의견
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1)유대교 학자들
우리가 서문으로 보는 출20:2을 제 1계명으로 보고 출20:3-6을 제 2계명으로 본
다. 그러므로 출20:17이 제 10계명이 된다.
(2)로마 카톨릭 교회
출20:3-6을 한 계명으로 보아 우상을 만드는 것을 첫 계명에 대한 부연설명으로
보고 있으며, 17절을 둘로 나누어 이웃의 아내라는 사람에 대한 탐욕과 재산에 대한
탐욕을 구별하고 있다.
(3)루터파 교회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같은 방법으로 구분하고 있다.
(4)개혁파 교회
우리들이 이용하는 소교리문답에서는 희랍정교회를 통해서 개혁파 교회에 전하
여진 것으로 예부터 전통에 따라 서문에 이어지는 하나님에 대한 4개의 계명과 인간
에 대한 6개의 계명으로 구분하고 있다.
3. 십계명의 내용
이제 십계명의 내용 하나 하나를 살펴보도록 하자.
(1) 서문(출20:2)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이 계명을 준 분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으로부터
인도해 낸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점을 분명히 밝혀
놓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 계명을 잘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아시고 이렇게 하
신 것으로 생각된다.
(2) 제 1계명(출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만이 유일한 참신이라는 사실을 밝히 보여주신다.
이 세계에는 다신론적인 종교와 사상이 많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팔레스틴 지방에는 다신론적인 종교가 대부분이었
는데, 유독 이스라엘만은 참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유일신 종교였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당시 그런 분위기 가운데
어떻게 이스라엘이 인간적인 생각과 노력으로 유일신을 섬길 수 있었겠는가? 전능하
신 하나님 여호와이시라는 것을 생생한 체험을 통해 알게 된 이스라엘에게 이러한
계명을 주셨을 때, 그들은 사실을 사실 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제 1계명은 다시 말해 하나님의 속성(자존성, 불변성, 무한성, 공의로움, 사랑
이 충만하심, 지혜로움, 선하심, 거룩하심, 진실하심 등)을 다른 신에게 부여하지 말
라는 말이며, 이러한 속성을 가진 신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뜻이
다.
(3) 제 2계명(출20:4-6)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
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제 1계명에 이어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계신다. 여
호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기 때문에 어떤 상(象)을 만들어 섬겨서는 안 된
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참으로 대단한 계명이다. 오늘날 우리로서는 그렇게 대단한
것으로 느낄 수 없을지 모르나, 그 당시로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그 지방
에서는 모두들 우상을 만들어 신이라고 섬기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아
무 우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으니, 이는 참으로 하나님이 직접 명하신 것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머리로는 이런 발상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긴다는 것, 이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사실 오늘날도 이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이 2계명을 1계명에 포함시켜 버리고 그
중요성을 애써 외면하기 때문에 수 많은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는 것이다. 우상을
섬기고자 하는 것은 죄로 인해 영의 눈이 어두워진 인간의 자연스런 발상이다. 이러
한 잘못된 발상을 근본적으로 지적하고 깨우쳐 주시는 것이 바로 이 2계명인데, 많
은 잘못된 교파나 이방 종교에서는 아직도 이 진리를 모르고 우상을 만들어 놓고는
인간의 마음을 미혹하거나 또는 달래고 있다.
이 계명과 관련하여 우리는 우리의 제사 제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
람들이 제사는 종교의식이나 미신이 아니라 단지 조상을 공경하는 우리의 마음가짐
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를 드리지 않겠다는 기독교인들을 조상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한국인들이 일반
적으로 행하고 있는 제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조상공경이 아니라 우상숭배임이 분
명하다.
제사가 영적인 존재를 섬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제사를 지낼 때에 우리가 조상의 영혼을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올려놓는 정도로
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어떻
게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 세상에 누가 조상을 하나님처럼 생각하겠는가?
그렇다면 제사를 지내도 좋다는 말인가? 여기서 기독교인들은 혼동에 빠지기 쉽다.
우리의 제사가 과연 영적인 섬김인가, 아닌가? 제 1계명만을 볼 때에는, 이 제사라는
행위는 분명 제 1계명을 어긴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혼동을 막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직접 그 해결책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
다. 그것이 바로 제 2계명이다. 제 1계명이 하나님만을 섬기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
아야 한다는 대명제라면, 제 2계명은 그 구체적 행동지침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
는 것이 다른 신을 섬기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눈에 보이는 어떤 형상을 만들어서
그것에 절하고 섬기는 것이 바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제사에는 분명히 눈에 보이는 신주(또는 지방(紙榜))가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음식을 차려 놓고 섬기고 있다. 또 우리는 그것에 절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비록 그것이 미신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즉 제 1계명을 어긴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분명히 제 2계명을 어긴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제사
는 분명히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행하지 말아야 할 행위
가운데 하나이다.(이에 대해서는 본인이 쓴 '기독교는 전통을 존중하며 조상을 공경
하는 종교이다'를 참고하실 것)
(4) 제 3계명(출20:7)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함을 잘 알고 함부로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
다.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는 이름이란 바로 그 인격 자체를 뜻하는 듯하다. 이 점
은 우리 한민족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이름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족은 우리 한민족과 이스라엘 민족 밖에 없는 것 같다.
이 3계명은 결국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자체가 문제이다. 즉,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뜻일 게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적으로만 이해하여 그 '이름' 자체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다'라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다'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였던 것 같다. 창4:26에 보면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
름을 불렀더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집단적인 제사의 시작으로 보아야 할 것
이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난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면 이 제 3계명의 해석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 망령
되이 행하지 말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5) 제 4계명(출20:8-11)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미리 맛보여 주시
기 위해 하나의 그림자 모형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이 안식일의 안식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져야 하고, 하늘나라 백성으로서의 경건의 훈련이
있어야 하며, 또한 실제적인 육체의 노고에서 쉼을 얻어야 한다.
이 안식일의 제도는 모세의 십계명에 의해 제정된 것이 아니라, 창조 때에 이미
제정된 것이다. 창2:3에 보면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다
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날과 해를 일곱 단위로 나누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로 미루어 보아 안식일의 제도는 이미 창조 때부터 지켜졌던 것을 알
수 있으며, 모세 때에 그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되고 문서화 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두 가지 대두된다. 첫째는 이 안식일날 우리는 무엇을 하
여야 하느냐 하는 문제이고, 둘째는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안식일인가 아닌
가 하는 문제이다.
첫째, 이 안식일날 우리는 안식하여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그러면 안식이란 무
엇인가? 무조건 아무 일도 안 하고 쉬는 것이 안식인가? 그렇지 않다. 안식이란 우
리 인간이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안식일날 하나님께 예배 드
리는 행위를 통하여 주님 안에 거할 수 있다. 안식일날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주님
과 영적 교제를 나누어야 하며, 또한 주님으로부터 영적인 양식을 받아 먹어야 한다.
둘째,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주일이 과연 안식일인가? 이것은 좀 까다로운 문제
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보자면 분명 오늘의 주일(일요일)은 안식일(토요일)이 아니
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 일요일날 예배를 드리는 것인가? 이 점에 있어 구약과 신
약이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구약 때에는 아직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이었
는데, 이때에는 하나의 모형으로서 우리에게 안식일이 주어졌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이미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모형이 필요없
게 되었다. 주님인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 바로 하늘나라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
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구약에서 모형으로 주어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
니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때에 우리에게 주신 명령 가운데 하나가 세상 끝날까지 성찬과 함께 예수님을
기념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하기 위해 주일날 예배
를 드리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절대 구약시대의 제사가 아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이미 끝이 났다. 이제는 부활을 기뻐하며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일날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늘나라를 미리 맛볼 수 있으며, 하나님
과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고, 또한 하늘나라로부터 오는 신령한 영적 양식을 받아
먹을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자면 구약의 안식일과 오늘의 주일이 그 내용면에서
닮은 점이 있다.
(6) 제 5계명(출20:12, 신5:16)
십계명에서 위의 네 계명은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지킬 계명이며, 아래의 여
섯 계명은 인간 사이에 있어 서로 지켜야 할 계명이다. 이 여섯 계명 가운데 첫째가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다.
이 계명은 그 표현이 부모를 공경하라고 되어 있지만, 그 내용을 좀 더 확대하
여 인간 사이의 질서를 잘 지키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로 자주 비유한다.
그렇다. 이 비유보다 더 적절한 비유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이나, 현상적으로는 육체의 부모를 통하여 비로소 이 땅에 육체를 입고 나타났
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부모를 비유로 생각하면 많은 도움을 얻
을 수 있다. 성경에 보면,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이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에
게 자신의 모형으로 부모를 주신 것 같다. 그러므로 인간간의 계명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이 계명을 먼저 주셨을 것이다.
(7) 제 6계명(출20:13)
살인하지 말라는 이 여섯째 계명은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을 잘 말하고 있다. 우
리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일반적으로 말하지만, 다른 면으로 보자면 생명의 종
교라 말해도 좋을 정도로 생명과 관련이 깊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바로
생명의 약속이며,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
음을 죽으신 이유도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우리
의 최종적인 목적도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생
명이란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이런 생명을 인위적으로 없앤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큰 죄일 것이다.
(8) 제 7계명(출20:14, 신5:8)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 이 7계명은 우리의 생활을 절제있게 하라는 뜻도 되고 하
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육체를 거룩하게 유지하라는 뜻도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
하여 주신 부부라는 관계와 가정이라는 제도를 파괴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도 하다.
(9) 제 8계명(출20:15)
도적질하지 말라는 이 8계명은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이해하여도 되겠지만, 좀
더 확대하여 탐심을 품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다. 인간의 탐심은 바로 우상
숭배라고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도적질하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 외에 더 사랑하는 것을 두지 말라는 말과도 같은 말이 된다.
성경 여러 곳을 보면, 하나님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물질이 나온다. 그리고 하나
님과 물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말씀도 나온다. 그러므로 이 도적질하는 마음은
바로 물질을 섬기는 마음이며, 그 마음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는 마음이 되
고 만다.
(10) 제 9계명(출20: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신 이 9계명은 이웃간의
신의를 강조하신 것이다. 거짓이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이다. 성경에 보면
사탄을 '거짓말의 아비'라 표현하고 있다. 즉 거짓이란 바로 사탄의 악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특히 거짓 '증거'라 한 점을 생각해 보자. 이것은 아마도 그 당시 이스
라엘 민족의 관습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재판
하여 돌로 쳐 죽일 때에 반드시 증인의 증거가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 이 증거란 아주 중요한 일이 된다. 한 사람의 생명을 뺏을 수
도 있는 그런 힘을 가진 것이 바로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증거를 함에 있어
거짓으로 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는 계명으로 명령하신 것이다.
(11) 제 10계명(출20:17)
네 이웃의 아내나 물질을 탐내지 말라고 하신 이 마지막 계명은 한 마디로 우리
에게 탐심을 품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앞의 제 8계명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탐
심은 곧 우상숭배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시에 섬길 수 없는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다.
신약에 오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이 있다. 그리고 구약에도 보면
욥의 고백에서 볼 수 있듯이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어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
심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다만 감사함으로 따를 뿐이다. 이러한 태도가 바른 기독교인의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탐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는 가운데
왜 '아내'가 들어 있나 하는 것이다. 간음에 관한 문제라면 이미 제 7계명에 나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간음에 관한 문제가 아님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이 점을 이해하려면 그 당시의 관습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그 당시에는 아내를
마치 남편의 소유물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이 계명을 해석할 때에는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라고 이해해야지, 그것을 굳이 '이웃의 아내'까지 포함하여 이해할 필요는 없겠다.
이웃의 아내에 관한 것은 이미 7계명의 간음 문제에 나타나 있는 바다. 이렇게 생각
하면, 이 제 10계명을 사람에 대한 것과 물질에 대한 것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로마
카톨릭이나 루터파 교회는 분류를 잘못 하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이렇게
둘로 나누기 위해 아주 중요한 제 2계명을 제 1계명에 포함시켜 무시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고백으로는 제 2계명은 도저히 무시될 수 없는 그런 계명이다.
이상으로 십계명을 다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계명들인데, 이것들은 사실 우리가 도저히 만족시킬 수 없는 너무나
도 높은 차원의 계명들이다. 이 계명은 하나님의 수준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못 지킬 것을 뻔히 아시면서 이런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단 말인가?
그렇다. 하나님께서 이 십계명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는 우리가 다 지키리라고
기대하고 주신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죄된 행위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이 계명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기준에 다다를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이 계명을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 우리는 영원히 이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죄인으로만 남을 수 밖에 없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 대신에 이 계명을 만족시키신
이가 있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 분이시다. 이제 우리는 그 분을 믿고 따름으
로써만 그 분이 이루어 놓은 승리의 고지에 함께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십계명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
에게 주신 계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93. 6.)
출처) http://bakgiwan.com.ne.kr/data/dek.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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