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전통 온돌’ 대용으로 쓰고 있는 ‘개량 온돌’의 발명자는 누굴까요? 아궁이에 불을 넣어서 방바닥을 데우는 한옥의 전통적인 난방 방법인 온돌이 ‘전통 온돌’이라면, 요즘 우리나라의 아파트나 주택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온수 파이프에 의한 온돌을 ‘개량 온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학에서 건축사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수업시간에 뜻하지 않게 한국의 온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묘한 흥분에 휩싸인 적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미국 오레곤 주에 1956년 라이트가 설계한 ‘고돈 하우스(Gordon House)’라는 주택이 있었는데, 이 집 주인은 2000년 이를 다른 사람에서 팔았고, 새로운 집주인은 이 집을 철거하고 주변을 개발할 계획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에서 라이트의 ‘고돈 하우스’를 지키자는 보존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마침내 여기에 굴복한 소유주는 100일 이내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조건으로 이 집을 공익 단체에 기증하게 됩니다.
...이 집에는 방과 거실 바닥을 데우기 위한 온수 파이프가 깔려 있었습니다. 1914년, 라이트는 제국호텔(Imperial Hotel)을 설계하기 위해 일본 도쿄를 방문했을 때 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호텔 설계를 의뢰한 일본 왕족의 초대를 받고 신기한 방으로 안내되었는데, 그때 라이트는 그 방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안락함을 경험하고 “이 방이 왜 이렇게 안락한가”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한국식 방(Korean Room)’이라는 답과 함께 그 원리를 설명 듣고 크게 감명 받아, 당시 그가 설계하던 제국호텔의 욕실에 한국의 온돌을 적용했습니다. 또한, 미국으로 돌아온 후 여러 채의 주택에 한국의 온돌을 적용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고돈 하우스’라는 것입니다. 라이트는 ‘고돈 하우스’의 바닥에 온수 파이프를 깔고 그 위를 콘크리트로 마감했습니다.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라는 일본인이 1914년 경복궁의 자선당을 일본으로 가져다가 자신의 집에 옮겨 놓고 미술관으로 사용했는데요. 이 건물은 1923년 발생한 지진으로 불 타고 화강암으로 된 월대만 남았습니다. 그 후 이 월대는 그 동안 오쿠라 호텔의 경내에 방치되어 오다가 김정동 교수가 발견하고 1996년 한국으로 반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돌들은 화재로 인해 약화되어 경복궁 동궁복원 시 자선당의 월대로 사용할 수 없어 새로운 부재로 대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이 부재들은 명성황후 시해 장소 부근으로 옮겨져 있습니다.
...라이트의 자서전을 뒤져보면 나머지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상대로 라이트는 그의 자서전 ‘An Autobiography’에서 세 페이지에 걸쳐 한국의 온돌에 대한 그의 경험과 이에 대한 적용 사례를 자세히 밝히고 있는데요.
...1914년 겨울, 라이트는 제국호텔 설계를 시작하기 위해 호텔 설계를 의뢰한 도쿄에 있는 ‘바론 오쿠라(Baron Okura)’의 집으로 저녁초대를 받게 됩니다. 당시 일본의 보편적인 난방은 ‘히바치(hibachi)’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흰 재 밑에 몇 개의 숯 막대를 채워서 둥근 그릇에 담아 방바닥에 두는 방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주변에 둘러 앉아 이따금씩 그 위에 잠깐 손을 올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추위를 쫓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난방 방식은 항상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라이트 일행은 추위에 떨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오쿠라의 저녁초대에 응했습니다. 오쿠라는 일본 황궁 주변에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저녁식사 장소는 너무 추워 식사를 할 수 없어서 라이트는 겨우 먹는 시늉만 했고, 저녁식사 후, 라이트는 “한국식 방 (Korean room)”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안내 됩니다. 이 방은 약 12피이트에 24피이트(약 3.6미터에 7.3미터) 와 7내지 8피이트(약 2.1내지 2.4미터)의 높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바닥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 있었고, 벽은 아주 평평했으며 연노랑 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날씨가 바뀐 것입니다. 갑자기 봄이 된 듯 한 것이죠. 라이트 일행의 몸에는 행복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난방을 위한 장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난방이 아니라 기후가 변한 것 같았습니다. 이 것이 바로 자연 친화적인 난방이 아닌가!
...라이트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 그 후 그가 설계한 30채 이상의 건축물에 ‘개량 온돌’을 적용했습니다. 라이트는 바닥을 데우는 난방방식을 가장 이상적인 난방방식으로 보고 태양열보다 좋은 난방이라고 극찬하기도 했죠.
...김정동 교수가 말하는 ‘오쿠라 기하치로’란 인물과 라이트가 말하는 ‘바론 오쿠라’라는 인물이 동일인인지 아닌지는 좀 더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오쿠라는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 ‘남작’의 작위를 가진 일본 귀족 신분이었습니다. 남작이라는 작위는 일본 귀족의 작위 중 가장 낮은 등급의 작위였습니다. 그런데 오쿠라 앞에 붙여진 바론(Baron)이라는 수식어는 영국의 작위 이름으로 가장 낮은 등급의 작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오쿠라 기하치로’가 바로 ‘바론 오쿠라’이고, 라이트가 경험한 건물이 자선당일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라이트의 자서전을 덮는 순간 코 끝이 시큰해 집니다. 다른 나라의 강의실에서 처음으로 우리 문화를 듣던 흥분과는 정반대로 숙연한 기분으로 이불 속 따뜻한 방바닥에 뺨을 갖다 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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