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식 '흙집' 짓기에 대한
시방서(1) |
현대인에게 ‘건강’이란 화두는 생태 환경, 생태 건축, 자연 의학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통나무 주택은 생태건축으로서 좋은 소재이지만 우리나라 기후 상 건축 소재로는 하자가 많은 단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흙집은 토담집만을 연상하여 외형이 초라하고 관리하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고, 전통한옥은 짓기가 까다롭고 생활하기 불편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결국 화학적인 건축 소재를 최소화한 자연 친화적인 집, 생활하기 편하고 보기에도 좋은 집이어야 한다는 바람으로 귀결됩니다. 물론 이러한 소망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서구화된 의식을 동양적 관점에서 다시 해석해내고, 우리 살림집의 지혜를 현대에 맞게 적용해 나가는 과정을 거친다면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현대 흙집 나도 지을 수 있다! 흙집이 갖는 병의 치유 기능이 최대 관심사로 주목받았을 때는 자신이 직접 지을 수 있는 흙벽돌 토담집이나 귀틀집을 지음으로써 흙집은 혼자서도 지을 수 있는 만만한 집, 저렴하게 지을 수 있는 집으로 인식되었습니다.때문에 현대인 생활에 맞춘 살림집 규모와 모양, 실용성 등 건축의 기본 요소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조금 별난 사람들이 혼자 짓는 집 정도로 인식된 것이지요. 거기에다 상업적인 바람을 타고 모양만 흙집인 영업 건물들이 흙집의 진정성을 헤치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집이 당대의 사람들 모두에게 보편성을 획득해 가기 위해서는 건축적인 기본 요소들이 충족돼야 합니다. 사는 이들이 안심할 수 있는 구조, 왜소하거나 초라하지 않은 집의 느낌(외형), 아파트 구조와 같이 익숙한 공간 구성, 현대인이 무엇보다 중시하는 전망과 단열, 심플한 내부 디자인과 마감, 전원에서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구들방, 벽난로, 툇마루 등)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나아가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하는 조형미까지 이루어 낸다면 민족건축의 대안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원형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한옥 목구조에서 찾습니다. 한옥 목구조 방식의 원형을 기본으로 삼으면서 타 구조 공법과 결합한 다양한 유형의 집들을 현대적으로 재창출 할 수 있을 때 규모와 용도에 따른 흙집 짓기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일 단계는 ‘터’부터 잡기 세상에 단 하나뿐인 터, 그 터에는 그에 맞는 생명을 잉태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터를 거스르면 좋은 집이 될 수 없습니다.주변의 자연환경, 터의 생김, 집의 방향 등 자연에 순응하는 집짓기야말로 건강한 집을 짓는 기본 요소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집을 짓기 전에 풍수(風水)를 보았고, 좌향(坐向)을 잡았습니다. 인간의 길흉화복을 풍수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으나 풍수(風水)란 말 그 자체로 산세(山勢)와 지세(地勢), 수세(水勢) 등을 판단하여 화를 막고 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큽니다. 서북쪽으로 산이 막혀 있어 겨울의 한파를 피하고, 동남쪽이 트여 새벽의 기(氣)와 대낮의 채광을 밝게 하고자 하는 지혜이기도 합니다. 가파르거나 막혀 있지 않은 땅, 물의 범람(장마)과 바람(태풍)의 피해를 피할 수 있는 살만한 터를 만났다면 그 터의 중앙을 잡아 집의 방향을 확정하는 것이 바로 좌향(坐向)입니다. 좌향(坐向)이란 묏자리나 집터가 자리 잡는 방위(方位)를 말하는 것으로서 산과 물의 형세, 전망(展望) 등을 살펴서 조화(調和)를 이루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길지(吉地)가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 중심점은 곧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터의 규모와 지세, 집의 방향을 잡았다면 건물의 배치를 궁리합니다. 도로와 접한 출입구를 기본으로 주변 조건을 고려한 건물의 입지를 정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단독주택은 집 자체로서만이 아니라 외부의 생활 동선과 연계된 전원의 개념이 강조되기 때문에 정원, 텃밭, 야외공간과의 연계성을 잘 살펴야 합니다. 특히 정화조의 위치와 오수 하수 처리 관을 고려해야 하고, 장마 시 물 빠짐이 잘 되도록 배수문제까지 검토해야 합니다. 꼼꼼하게 공간 구성을 염두 해둬야 집을 지으려고 할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건축물 설계입니다. 건축물의 설계란 건축 구조, 평면 구성, 지붕 모양, 마감 사양을 정하는 일인데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평면 설계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러나 이렇게 되면 건축물의 배치와 구조, 지붕모양, 외부와의 연계성이 깨져 공간 구성도 균형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때문에 공간 구성이라 함은 집 전체 모양과 각각의 공간이 갖는 내용을 따져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을 때 탄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 평면 설계(공간 구성)를 위한 몇 가지 기준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집의 용도에 따른 규모와 공간 구성이 필요합니다 1세대 주거용 살림집인가. 2~3세대 동거용 살림집인가, 전형적인 주말주택용인가, 주말주택으로 사용하다가 주거용 살림집으로 전환할 것인가, 펜션 등 영업형태와 결합한 주택인가에 따라 공간 구성이 달라집니다.기능과 용도를 고려한 집짓기야말로 허세 없는 알뜰한 집짓기를 가능케 합니다. 둘째 공동체문화의 공간과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장을 통일시키는 공간 구분이 좋습니다 아파트의 제한적 공간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거실을 중심으로 주방과 방이 구성되는 일반적 형태를 선호합니다. 서구형 목조주택에 익숙해진 단독주택 설계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우선하는 밀실형(복도형) 구성이 보편적입니다.하지만 전원, 단독주택은 생활공간(거실, 주방), 수면공간(방), 사랑방 공간(서재 또는 손님방 형태)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좋습니다. 터에 맞도록 일자형, ㄱ자형, ㄷ자형, T자 블록형 등 집 전체의 디자인까지 고려하여 공간 설계를 해야 합니다. 본채와 별채, 본채와 창고로 구분하기도 하고, 복층 형태로 1층은 생활공간 2층은 수면공간으로 공간 구분을 하기도 합니다. 셋째 주방(부엌)은 안주인의 생활공간이면서 문화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거실과 방의 배치를 중심으로 그 사이의 공간을 거실과 연계시켜 주방을 배치합니다. 주(主)개념이라기보다는 보조 개념이 큽니다.하지만 주부의 생활공간은 주방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주방의 배치를 중심으로 한 공간 구성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자연의 조망이 가능하고, 채광이 밝은 부엌, 손님맞이 행사 때 불편하지 않은 동선의 연결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장독과 김장독, 빨래를 널 때 드나드는 것이 편하도록 배려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넷째 가능한 많은 수납공간과 여백이 필요합니다 시골살이는 알게 모르게 쌓이는 살림이 많습니다. 시장을 매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냉장고 이외에도 덩치 큰 먹을거리(쌀이나 부식)의 저장소가 필요하고, 기본적인 세탁실과 수납창고 기능의 다용도실이 꼭 필요합니다.특히 집을 다 지은 후 공간과 잘 어울리지 않는 돌출된 가구 배치가 눈에 거슬릴 수 있습니다. TV장, 붙박이장, 침대의 위치를 사전에 결정하여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고, 간단한 청소 도구함이나 분리수거 재활용품 등을 쌓아 놓을 수 있는 공간 등 여백이 있어야 합니다. 주방 창은 가능한 전망을 많이 확보하고 환기가 잘 될 수 있도록 합니다. 다섯째 자연과 하나 되는 연계성, 단독·전원주택만의 특권을 살립니다 자연의 일부로서 집이 공존하는 형태야말로 생태적인 집짓기의 기본입니다.어울림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입니다. 자연환경과 터의 생김, 이웃과의 관계까지 고려한 배려가 되어야 합니다. 출입구와 안 마당, 전체적인 집의 향을 고려하되, 거실은 마당과의 연계성을 살려 툇마루나 쪽마루를 징검다리 삼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구형 데크 개념의 발코니가 아니라 내려서면 마당이고 올라서면 거실로 들어설 수 있는 외부와의 열린 창구 역할을 합니다. 조금 넉넉하니 지붕이 있다면 더없이 좋습니다. 터에 따라 다르지만 뒤뜰이 있는 집을 만들 수 있다면 뒤 툇마루를 두어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쉼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여섯째 다락방, 별채, 정자 등은 신중한 고려와 선택이 필요합니다 다락방은 많은 이들의 추억이 있고, 소망하는 공간입니다.하지만 어린 자녀가 있거나 손자 손녀를 위한 특별한 공간으로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쓰지 않는 물건들의 창고 이상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어린 자녀가 있는 2~3세대 공동 거주용이라면 계단과 난방, 채광 등을 고려하여 하나의 완벽한 공간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별채는 구들방 형태의 방(서재나 손님방으로 활용)과 정자를 결합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름에는 정자가, 겨울에는 구들방이 돋보이는 다목적 형태가 됩니다. 별도로 짓는 원두막 형태 정자는 외부 손님이 왔을 때 좋은 느낌의 공간입니다. 2단으로 하여 아래는 지하수 물탱크 등을 보관하고, 위는 원두막 형태로 기획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텃밭에 딸린 원두막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글쓴이 이동일님은 흙집의 대중화를 위한 흙집 연구가로 '행인흙건축'의 대표입니다.] |
출처 : 흙에서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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