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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구별된 인간

기쁘리 2009. 2. 15. 10:26

신학자료실|2008/04/12 11:41

5. 동물과 구별된 인간
                        5. 동물과 구별된 인간
 
 
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 살생(殺生)하지 말라고는 안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했
지 동물의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불교나 브라만교에서는 영혼윤회설(靈魂輪回說)을 주장한다. 곧 사람이나 짐승을 같은 것으로 본다. 왜
냐하면 그들의 종교의 기본사상이 범신론(汎神論: 만물은 다 신이란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죽
으면 그 혼이 짐승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미생물까지도 죽여서는 안된다고 한다. 불교에서 육식(肉食)을
금하는 것, 미생물의 살생을 금하는 것은 영혼 윤회설의 사상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가령 쇠고기 갈비를
뜯는 것은 자기 조상의 살을 뜯는 불경한 일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조상 중에 한 분이 죽어 그 영혼이 소에게 들어가 소가 되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이도
잡질 않는다. 혹 사람이 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혹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사상 때문이라지
만 사람과 짐승 심하게는 미생물까지도 같이 보는 것은 딱 질색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는 존재의 일정성(一定性)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면 사람, 짐승이면 짐승, 이렇게 엄격히
구별되었음을 말한다. 창세기 1장의 "각기 종류대로"란 말이 여러 번 명시되어 있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포수가 산토끼를 발견하여 좇아갔다. 어느 듯 절간 속에 들어갔다.
그러나 포수는 잡아야겠다는 일념 때문에 절간인줄도 모르고 총을 겨누었다. 그랬더니 중이 옆에서 말하
기를 "산토끼를 죽인 자는 죽어서 산토끼가 되고…"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다가 보니 산토끼
를 놓치고 말았다. 그만 이 포수는 중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중이 깜짝 놀라면서 "왜 이러시오?"라고 했
다. 포수가 말하기를 "중을 죽인 자는 죽어서 중이 되고…"라고 했다는 것이다.
 
오늘도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는 하루에 천명 가량 굶어 죽는다는 비참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큰 이유가 소가 많은 까닭이라 한다. 소가 많으면 부자로 살겠건만 그들의 종교사
상이 범신론적 윤회설이요, 특히 그들은 소에게서 사람이 나왔다고 믿기 때문에 소를 신으로 모시고 대
접하노라고 사람이 굶어 죽는 다는 것이다. 거의 사람의 수나 소의 수가 비슷할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은 굶어 죽을지라도 소는 굶겨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도 정부에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
기 위해 암소의 생식기에 [루-프]장치를 하여 번식을 막으려고 했지만 힌두교 교도들의 [데모]를 만나
중단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그 나라는 그릇된 종교사상 때문에 망해 가고 있는 것이다.
 
만일 나를 인도의 대통령으로 세워준다면 세 가지 정책을 세워 백성을 구해 볼 용의가 있다.
 
그것은 첫째 많은 소를 외국에 수출하여 외화를 획득하므로 나라를 부하게 만들 것이며
둘째 소가 먹는 양식을 사람에게 돌려 백성을 배불리 먹게 할 것이며
셋째 백성을 계몽시켜 인간의 가치를 알게 하고 소를 먹게 하여 영양실조에서 건져낼 용의가 있다.
 
그리고 모하메드교에서도 "황충을 죽이지 말라 왜냐하면 전능하신 신의 군대이기 때문이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이 옳지 않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처음 사람에게는 식물(植物)과 과실들을 식물로 주시고 동물은 종으로 쓰게 했다. 그것은 사람이 동물의
이름을 지어 주었고, 또 아담 하와가 입은 가죽옷은 짐승을 죽여 제사한 것에서 얻은 것이 증명이 된다.
 
그러나 홍수 이후 노아는 동물의 고기를 먹을 수 있는 특권을 허락 받았다. 창 9:3에 보니 "무릇 산 동물
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였다.
 
또 이 밖에도 먹을 짐승과 못 먹을 것을 구분지어 주시기도 했다. 레위기 11장을 보면 굽이 갈라진 것, 새
김질하는 것 물고기는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먹을 수 있고 날개가 있으나 기어다니는 것 등은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행 10:7∼16에는 무슨 고기든지 먹어도 괜찮다고 하셨다. 거기를 보면 베드로가 비몽사몽간에 공
중에서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 왔는데 그 중엔 땅의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먹어라"고 하셨지만 "나는 속되고 깨끗지 않는 것은 먹지 않습니다"고 했으나 세 번이나
"먹어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소위 신자들 중에도 고기 먹는 이에 대하여 까다롭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음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행 15:20, 29절과 21:25에 목매어 죽인 것을 먹지 말라는 말을 오해하여 "개고기를
먹으면 천당에 못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 본문은 그런 뜻은 아니다. 이 금령은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들 사이를 조화(調和)시키기 위하여 취해진 과도적(過渡的)인 결정인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정통신학자들이 보는 해석이다. 당시 유대인 신자들은 아직 율법의 어떤 부분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고 반면에 이방인 신자들은 그런 규례를 지키고 있질 않았다. 그러므로 이들은 다 같이 예수
를 믿으면서도 서로 통하지를 않았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이를 사이들 화합시키기 위하여 이방인 기독
신자들이 지켜도 손해볼 것 없는 법규를 지키게 하여 유대인 기독신자와 화합케 하는 법을 만장일치로
가결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초보적인 유대인 기독신자들이 없어진 후대의 이방인 교회에 대해서까지 이 금령의
외부적 실행은 반드시 공동교리화(共同敎理化) 해야 한다고 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이 가결이 당시 유
대인과 이방인을 화합시키는데 필요한 과도적인 결정인 까닭이며 또한 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벌써 하나
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계시(啓示)로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다고 하셨기 때문이다(행 10:11∼16 참조).
 
그리고 상식으로 알아둘 것은 레위기 11장의 먹을 짐승과 먹지 못할 짐승의 구별법제정의 목적은 주로
유대인으로 하여금 이방인과 혼합(混合)하지 않게 하려는데 있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유대인과의 구별
법이 불필요해졌기 때문에 이 금령은 해제(解除) 되어진 것이다. 그것이 행 10:11∼16의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목메어 죽인 고기를 먹지 말라는 금령은 지켜도 손해 될 것 없고 지키지 않아도 죄될 것도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목매어 죽인 고기를 먹지 않는 형제를 율법주의자라고 정죄할 것도 없고 먹는 형제
를 교회가 법을 어기는 자(犯法者)라고 정죄할 것도 없다.
 
롬 14:3에 바울이 말하기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
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고 하셨다.
 
해방직후 경남노회가 당시 고려신학교 교장이었던 박윤선 목사에게 "목메어 죽인 고기란 무엇인가?"라
는 질문에 답하기를 "원문엔 개고기란 말이 아니고 잔인하게 짐승을 목메어 살을 뜯어먹는 짓을 하지 말
라는 뜻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종교적인 의미로선 이상의 해석으로 만족하지만 위생적인 의미에서 유익하다면 지키는 것이 좋
다고 본다. 현대의학자들이 구약의 먹지 말라는 짐승을 연구해 본 결과 인체에 유익이 없는 것이 있었고
또 생피를 마시는 것은 여러 가지 병균이 있어 좋지 않다는 것이 판명되었다고 한다.
 
그 실례로 옛날 구라파에 흑사병이 유행되어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유대인들만은 면역(免疫)이 되었다
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구약에서 금한 불결한 고기들을 먹지 않았기 대문이라고 한다.
 
아무튼 살인은 금하지만 살생을 금하질 않았다. 그러나 무자비하게 짐승을 단번에 죽이질 않고 목메어
생살을 뜯어 날것을 피 째로 먹는 일은 안 해야 하며 또 구약의 말씀대로 짐승일지라도 어미와 새끼를 한
솥에 삼는 등 잔인한 일은 안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돼지고기나 개고기를 먹지 않는 자를 골려 주기 위하여 일부러 그 앞에서 늠름하게 먹는 것은 형
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자가 될 것이고 먹질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방하는 것도 잘못이다. 물론 이런
문제를 구원문제에 결부시킬 때는 단연코 배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 외에는 먹고 안먹는 것은
때와 장소를 봐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바울은 말하기를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
치 않게 하리라"고 했으니 본받아야 할 말이 아닐 수 없다(고전 8:13).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번 짐승과는 구별된 고귀한 인생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살인은 금하고
살생은 허락한데서 발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만이 이성적이고 도덕적이고 영생의 가능성
이 있으니 죽이지 말라는 것이고 짐승은 이런 것들이 없으니 필요할 때는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헬라의 어느 철인처럼 짐승으로 태여 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여 난 것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다윗은 말하기를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
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저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
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
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감사의 노래를 불렀다(시
8:4∼9).
 
그런데 요즈음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 잡듯 무자비하게 살인하는 일이 전세계 도처에 일어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여! 이 민족과 전세계인류의 가슴깊이 혁명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인간생명의 고귀성을 자각하
게 하시며 서로 사랑하고 보호하므로 평화와 행복을 누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