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이맘때, 내 연애는 이미 끝장이 나있었다. 그 관계가 완전히 종료한 것은 가을의 문턱이었지만, 흡사 썩어 버린 뿌리 위 아직은 죽은 티가 나지 않는 잎줄기나 만지작거렸던 것 같은, 그런 이상한 여름이었다. 나를 구성하던 일부가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아무렇지 않은듯 살아가고 있던, 되돌아보면 서글픈 여름이었다.
오늘 강연 도중에 그 이상하고 서글펐던 여름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자신도 최근에 이별을 했다고 고백한 어떤 여자가 내게 물었다. ‘나는 이만큼 좋아하는데, 상대방은 그만큼은 나를 아끼지 않는 것 같을 때, 전 너무 힘들었어요. 같은 마음으로 좋아하기가 왜 이렇게 힘이 들까요?’
사랑한만큼 되돌려받지 못해 사람들은 사랑이 고달프다 말한다. ‘나는 이만큼 좋아해 이만큼 해줬고 이만큼 희생했는데, 상대는 그러지 않아 오히려 공허하다’는 것이다. 사랑의 본질이 계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한들, 내 맘 같지 않은 네 맘을 볼 때마다 허탈하다는 것이다. 조금도 손해볼 짓은 하지 않고 싶어하는 시대, 주고받는 감정들은 쉽게 숫자로 가늠되고 그렇게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계산기가 돌아가는 관계에서 사람들은 더 쉽게 상처받고, 더 쉽게 싸운다. 그리고 떠난 상대방을 원망한다.
왜 그렇게밖에 만나지 못할까. 마음의 사이즈에 집중하면 할수록, 우리는 불행해진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비교할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는 점점 더 집중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연애의 주체가 아니라 완벽한 타자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내가 더 많이 좋아해!’라며 그에게 백허그를 하던 순간에조차, 나는 어쩌면 ‘그러니까 지금부턴 네가 나를 더 많이 좋아해줘’라고 외치고 있던건 아니었나. 가장 로맨틱하다 믿었던 순간, 나는 오히려 서서히 망하는 연애로 노를 저어 가고 있던건 아니었나. 이제와 생각할수록 원통하고 분하다. 그리고 한심하다. 그냥 좋아하는 느낌 그 자체로 행복할걸. 곡소리내며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모든 것 중에, 지켜 내지 못한 것은 그 남자 뿐이야'라고.
충만하고 안정된 관계를 꿈꾼다면 기억해야 할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러므로 마음의 사이즈에 연연하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겠다. '나는 이런데 너는 왜'라는 질문이 마음 속에 존재하는 한, 함께 나눈 시간이 길어질수록 '너만 있으면 돼'에서 '너만 없으면 돼'로 옮아가는 것이 시간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함께 한 시간이 그나마 있던 추억까지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면서 상대도 사랑한다는 거, 그건 일단 여기 존재하는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을 때라야 가능한 거다. 모두들 내 마음은 외면한 채, 너의 마음은 왜 더 커지지 않는지를 따져 묻는다. 절대 손해볼 배팅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흰자위가 벌개진 새벽녘의 타짜처럼.
그런데 솔직히 이제 사랑이 좀 피곤하다. 마음의 사이즈를 가늠할 일 자체를 안 만들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와 마음을 섞고 몸을 섞는 일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데. 나이를 먹으며 사라지는 건 머리숱이나 골밀도 뿐만이 아니다, 피곤함에 대한 참을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져 간다. 딱 봐서 피곤할 일은 아예 시작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멘탈에 잘 듣는 자양강장제가 있다면, 그거 한 병 시원하게 원샷했겠지만.
아, 그나저나 마음의 사이즈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해 두고, 언제쯤 이 지면에서 몸의 사이즈에 대한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