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게 해주세요!
가을로 접어드는 2009년 9월의 어느 날. 한 노신사의 건축허가 관련 민원을 접하게 되었다. 고충 민원을 접하다보면 그동안 부패방지 조사 업무를 주로 해올 때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고충 민원을 담당하는 과정에서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들이
민원을 접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좀더 폭넓고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접하게 되는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곤 한다. 이런 마음가짐을 나는 소위 ‘고충 마인드’라고 생각하는데 다시 한 번 그런 마음가짐을 갖게
해준 것이 바로 지금 소개하려는 이 노신사의 건축허가 관련 민원이다. 대략의 내용은 이러하다.
집을 짓게 해주세요!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어느 노신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이 살고 있는 고양시 ○○구 소재 기존 기와집 건물을 헐어내고 새롭게 건물 4동을 신축하여 자녀 4명에게 각각 물려주려고 ○○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허가권자인 ○○구청은 건축허가를 반려하고 보완을 요구했다. 진입로 소유자의 토지사용승낙 없이는 건축행위를 할 수
없으므로 진입로 토지소유자 전원으로부터 사용승낙서를 받아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이 노신사는 구청의 보완 사항을 지키기 위해 해당 진입로 토지소유자들에게 토지사용승낙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거의 두 달여 동안 노력한 결과 진입로 부분 4개 필지 중 3개 토지소유자로부터 사용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마지막 남은 △△번지 토지 소유자였다. 이 사람은 자신의 미승인 건물에 승
인을 내주지 않으면 노신사의 토지사용을 승낙할 수 없노라고 했다. 사실상 이 사람에게 토지사용승낙을 받는다는 것은 노신사의 힘으로는 어려워보였다.
고심 끝에 노신사는 해당 구청에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의견을 구했다. 그러나 해당 구청은 민원인의 건축허가를 위한 진입로 부분은‘보차혼용통로’*에 접해 있는 경우이기 때문에 진입로로 활용 예정인 보차혼용통로 부분 토지소유자의 사용승낙을 받지 않으면 건축허가가 불가하다는 논리만을 계속해서 반복할 뿐이었다.
답답했던 노신사는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권익위에 해결 방법이 없을지 물어왔다. 사정을 들어보니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일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의 자료를 모아 살펴보고 현장의 상황을 우선 확인했다. 자세히 조사를 해본 결과 1975년 이전 국토지리 정보원 항측 사진상 이 진입로는 폭 4m 이상으로서 건축법상 도로 지정을 위한 고시 제도가 없던 시절부터 형성된 마을회관 앞길 현황도로**이므로 굳이 토지사용승낙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자료를 근거로 노신사가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구청에 다시 한 번 요청을 했다. 그러나 구청의 의견은 달랐다. 이 정도 근거만으로는 이 진입로 부분을 현황도로로 인정하기 어렵고 원칙적으로 지구단위계획상 보차혼용통로일 뿐이지 건축법상 도로가 아니어서 진입로 토지소유자의 토지사용승낙이 필요하다며 건축허가를 내주기 어렵다고 했다. 아울러 여기에 해당 구청 △△동의 유사 건축허가 건에서 지구단위계획상 보차혼용통로로 지정된 진입로 부분 토지소유자의 토지사용승낙 없이 건축허가를 내주었다는 이유로 감사지적을 받고 허가 담당자가 징계를 받은 사실이 있었노라는 말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 자료만을 가지고 구청에서 건축허가를 받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법령, 판례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이 진입로는 지구단위계획상 보차혼용통로로서 고양시‘제1종 지구단위계획 지침’을 보면 건축법상 대지와 도로와의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건축법」제 2조 제11호는 도로를‘보행과 자동차 통행이 가능한 너비 4m 이상으로서「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등 관계 법령에 따라 신설 또는 변경에 관한 고시가 된 도로나 허가권자가 그 위치를 지정·고시한 도로’를 건축행위에 필요한 도로로서 정의하고 있다. 단순히 건축 행위를 위해 비법정 도로에 대하여 허가권자가 그 위치를 지정·고시한 경우와 달리 이러한 법정 도로(도시계획예정도로 포함)는 토지소유자의 토지사용승낙서가 필요 없었다. 이 보차혼용통로는 구청의 의견과는 달리 법정도로였다.
한편 그 사이 구청에서는 이 민원 해결에 어려움을 겪자 이 일을 맡았던 담당 팀이 교체되었다. 팀이 바뀌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조사했던 사실관계 및 추가적인 분석 자료를 근거로 들며 다시 한 번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팀 교체 이후 민원 해결 실마리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다. 해당 구청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위원회의 견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만 지금까지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고, 같은 사안에 대해 감사지적을 받고 담당자가 징계를 받은 일까지 있었으므로 자체적으로 시정을 하기는 어렵고 위원회에서 공식적인 시정 의견을 보내주면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보겠노라고 했다.
이제야 해결이 되는 것 같아 무척 기뻤다. 그동안의 분석 자료를 모아 의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해당 구청에 이 노신사에게 행하였던 기존 건축허가 반려처분을 취소하도록 권고했다. 구청에서는 위원회의 의결서를 받자, 자체 회의를 통해 위원회의 의결에 따르기로 하였다. 드디어 노신사가 그토록 바라던 건축허가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일이 마무리가 되자 해당 구청의 허가 담당은 이전에 있었던, 지구단위계획 상의‘보차혼용통로’와 관련된 비슷한 일에 대해 징계 처분을 받은 것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해왔다.
한 시민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었으니 자신의 억울함도 풀어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달라고 요청해온 것이다. 이런 요청을 받게 되자 순간적으로 마음이 참 복잡해졌다. ‘소신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정업무를 한 것이 오히려 감사 등의 표적이 되고, 이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있구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기 소신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인·허가 업무를 해나갈 수 있을까. 지나친 감사나 비판적인 시각으로 인해 담당 공무원이 위축이 되어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는 것은 아닐까.’
앞서 말했듯이 부패방지 조사 업무를 하다보면 그 사안 자체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자연히 접근하게 되어 그로 인해 누군가 간접적으로라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은 잘 못하게 되고 설사 누군가 그렇게 피해를 보더라도 그 상대방에 대해 눈여겨보게 되지 않는다. 그런 피해자를 살피기보다는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소명을 다해 기여를 하고
있다는 생각만 가진다. 그러나 고충해결 조사 업무를 하다 보니 앞에서 밝힌 대로 늘 새롭게 깨닫게 되는 점이 있다. 감사 기관 등에서 사안 자체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거나 극단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게 되면 관련 업무 담당자들이 자연히 위축될 수 있겠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축된 행정 처리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
가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일을 하면서 나부터 혹시 편협되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로 인해 어려운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해 온 국민들이 혹시나 억울한 일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더 세밀히 살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주택건축민원과 이 재 성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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